서대문 교회는 나날이 폭발적으로 부흥을 거듭하였다. 성도수가 만 명을 초과함에 따라 서대문 교회는 더 이상 성도들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교회는 새 성전 건축을 위한 부지를 찾기 시작하였다. 여러 곳이 부지로 거론되었지만 많은 성도들이 모이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여의도가 추천되었다. 그 당시 여의도는 단지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활주로로 이용되는 땅이었다. 그 당시 여의도는 황폐한 섬으로서,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조차도 없었다. 교통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고 여의도에 건물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강하게 추진하였다. 마침내 교회는 여의도에 부지를 구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건축비가 너무 비싸므로 교회가 이 거대한 빚을 감당할 것 같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기적을 믿기에 조용기 목사는 그의 마음속에 불타오르는 소망을 가지고 추진하였다.
그러나 건축시작부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닥쳐오기 시작하였다. 건축이 시작되자마자 교회는 자금 문제에 봉착하였다. 중동 오일쇼크의 여파로 달러에 대한 원화의 가격이 하락하여 건축 자재의 가격이 상승하였고 교회 헌금도 감소하게 되었다.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중동 오일 쇼크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은행이 교회에 신용한도를 줄임으로 인하여 부채의 압박은 더욱 가중되었다. 드디어 교회의 건축이 완전히 멈추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왔다. 이에 조용기 목사는 매일 밤, 공사 도중 멈춘 녹슨 철골을 움켜잡고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주님! 차라리 이 녹슨 철근이 내 머리 위에 떨어져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비오는 날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닥에 깔린 쌀가마니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곤 하였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 성도들도 하나 둘씩 마루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성도들의 교회 살리기 운동은 가속화되었다. 그러다가 한 성도가 개인 패물을 팔아 가져오자, 다른 사람들이 집을 팔아 헌금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헌신과 희생의 결과 교회는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고 성공리에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73년 8월 19일 현재의 여의도에 있는 성전에서 최초의 예배가 드려졌다. 그리고 1973년 9월 18일부터 22일까지 5만명의 한국성도와 5천명의 외국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0차 세계오순절대회가 여의도순복음교회 본 성전과 효창운동장에서 열렸다. 9월23일에는 만 팔 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롭게지어진 여의도성전의 헌당예배를 봉헌하였다. 이로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